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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Log

[유사현] Can we...

※ <The first We can battle> PC5 유사현  예선전 이야기

 

 



※ CoC 시나리오 <The first We can battl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의 정신은 충격에 약해서 큰 사건을 겪으면 정신연령이 그 순간으로 고정된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는 나이를 먹고 알아서 자라지만, 정신은 그때에 계속 머물러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몇 살 언저리를 떠도는 중일까.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섹터 여기저기에 숨겨진 지뢰가 있다더니만 터진 모양이었다. 곧이어 폐부를 쥐어짜는 높은 비명소리도 메아리처럼 울렸다. 누군가 죽었거나 죽지 않았더라도 곧 그렇게 될 판이었다. 부상자는 죽이기 가장 편한 상대였으므로. 중요한 것은 곧 죽을 이가 화려하게 이목을 끌어준 덕분에 자신 역시 죽음에서 한 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소리에 사내가 멈칫하는 사이 유사현은 긁어모은 모래를 상대의 눈에 뿌렸다. 짧은 욕설을 내뱉으며 두어 걸음 물러서는 그 찰나가 서로의 생사를 뒤바꾼다. 단도를 상대의 발목에 꽂았다가 뽑아낸다. 균형이 무너진 몸을 완전히 쓰러뜨려 목에 한 번 더 단도를 박아 넣었다. 상대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절명. 끝이었다. 

 

"위험했어요. 죽는 줄 알았다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어도 마치 있는 것처럼 친숙하게 말을 건네며 단도를 수거했다. 어차피 이 말은 참가자들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아마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몇 만이나 몇 십만 혹은 몇 백만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화면 너머로 편하게 즐기고 있을 소비자들에게. 유독 카메라가 잘 보여서 그때마다 시선을 맞추고는 있는데, 그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겠다. 예선전이 끝나면 검색해 봐야지. 단도에 묻은 피를 쓰러진 남자의 옷에 잘 닦은 후 갈무리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

 

사현 : 살아들 있어요?
도준씨 : 알아서뭐할래
선희씨 : 나방금죽을뻔했어

 

답장할 기력들도 있고 멀쩡하네요.

 

생존 여부를 확인한 유사현이 웃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사실 이도준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이니 예선에서 적당히 다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정도이다. 김선희는... 잘 모르겠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외롭다는 이유로 신청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는 사이니까 하고 죽어줄 사람도 아니었다. 싸우는 능력도 없는 일반인이면서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것도 용하다. 이 사람 정말 왜 신청한 거지? 본선에서 만날 수는 있으려나. 그래도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정이 들었다고, 어디선가 고군분투하고 있을 멤버들을 생각하며 사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철거직전의 건물들이 여기저기 난립해 있는 섹터였다. 아까 방송으로 들었을 때 곧 폐쇄될 구역과 가까운 곳이니 여기서 잠복하면 한 두 명 정도는 더 쓰러뜨리는 것이 가능하리라. 다시 쪼그려 앉은 사현이 싸움의 흔적을 적당히 남겨놓고 익숙하게 자신의 흔적을 역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싸우고 다른 건물로 잠복하는 것처럼. 어설프게 지운 흔적을 남겨 급하게 처리하고 떠난 것처럼. 걸려든다면 좋은 일이고 걸리지 않는다고 해도, 살펴보는 사이를 노리면 될 일이었다. 사람을 죽일수록 환호를 받는 예능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이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정확한 프로그램 명은 <We can Battle Royal>.  줄여서 위캔배로라고 불리는 살인예능에 사현이 참가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살인'과 '예능'이라는 이 맞지 않는 단어의 조합은 세상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승리한 것은 도덕과 윤리보다는 자본주의였다. 현대판 콜로세움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살인예능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새로운 장래희망으로 손꼽힐 정도로 인기를 얻었으므로. 그러니 처음부터 윤리의식이 희미한 자신이 참가하는 건 이상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손님이 거의 없는 해결사 사무소 홍보도 되고, 우승한다면 거금도 따라올 테고. 여러모로 이득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살아남는다는 가정아래라지만 해결사 일도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니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말이 좋아 '해결사'지 '청부업자'에 가까운 직업이었다. 합법이냐 불법이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금액이 맞는다면 무슨 일이든지 했다. 물건이나 사람 찾기부터, 협박이나 절도, 살인까지. 어쩌다 자신의 윤리관이 이렇게까지 바닥을 찍는지 고민해 보아도 딱히 짚이는 구석은 없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도 어딘지 어긋난 사람은 있기 마련이므로.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꼭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이도준은 그렇다 쳐도, 김선희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원래 이렇게 아는 사람들 위주로 사람을 선발하나 싶을 정도로 참가자들 중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가깝게는 집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보는 형이 있었으며, 제법 오랜 시간을 이웃집 사이로 지내며 반찬을 건네주기도 한 옆집 동생도 있고, 최근에 취미로 시작한 댄스 아카데미에서 춤을 가르치게 된 제자님도 있었다. 원래부터 자신의 주변에 그럴만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이 살인예능으로 인해 살인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진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예능이라면 하하 호호하며 힐링방송을 찍어야 할 사이들이 웃으면서 칼을 꽂게 생겼다. 

 

"대충 이 정도면 되겠네요."

 

두 손을 부딪치며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는 자연스럽게 흔적과는 반대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간간히 멀리서 총성이라든가 비명소리가 현실성 없이 들려왔다. 청명. 하늘은 깨끗하게 파랗고 바람이 선선하여 무척이나 좋은 날에 아무 원한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죽어라 달려든다. 유희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명예가 된 세상에서 살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사현은 생각했다. 혼자만 이런 성향을 타고났다면,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끝없이 고뇌하며 해결사 일을 했을 테니까. 자신의 사고방식이 온전히 자란 어른의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또 어떻단 말인가. 다행히도 세상에는 이렇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많을진대. 그러니 만난다면 죽는 것도 죽이는 것도 기꺼이 할 수 있으리라. 뭐, 우승은 내가 하겠지만. 

 

섹터의 입구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이 보여 건물 그림자로 더 깊숙이 몸을 숨긴다. 마음속으로 타이밍을 가늠하며 단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예선전이 끝나면 도준 씨와 선희 씨에게 저녁이라도 먹자고 해야겠다. 본선에서는 아무래도 두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게 좋을 테니까. 들어서는 사람은 한 명, 움직임으로 보아 부상을 입은 것 같다. 저녁 메뉴는 고기가 좋겠지. 예선이 이 정도라면 본선은 더 힘들 테니까. 사현이 남긴 흔적을 본 남자가 고민하는 것이 보인다. 짧은 망설임 끝에 다리를 끌며 남자가 사현이 몸을 숨긴 건물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녁 메뉴 선정까지 마친 사현이 짧게 웃었다. 어쩐지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사현이 배로에 참가한 이유 : 사무실 홍보겸+스릴있는게 좋아서.

랑 다른 참가자들에 대한 생각을 짤막하게나마 풀어볼 생각이었는데 약간 디스전 된것같고..?

수월하게 잘 풀릴 것 같다던 유사현은 거미줄에 걸린 무언가 같은 느낌을 받으며 죽었다고 한다.

최후의 배틀할 때 사실 집중 못했을 것 같음. 송사린씨 내게 무슨 짓을 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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