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6) 썸네일형 리스트형 [M] 이걸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3) 참으로 선선하고 좋은 날이었다. 며칠 이어졌던 폭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구경하던 사람들 모두가 이런 '길일'을 잘도 잡았다며 괜히 용한 무당이 아니라고 수군거렸다. 하얀 천을 늘어지게 매달아 사방을 수호하고, 커다란 병풍 앞에는 질 좋은 재료들로 만든 상을 거나하게 차리니 제법 본새가 나쁘지 않았다. 재비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북을 잡고, 무당은 화려한 옷차림으로 나는 것처럼 걸어 들어와 방울을 흔들었다. 북소리와 어우러지는 꽹과리 소리를 뚫고 날카로운 무당의 굿하는 소리가 징징 울렸다. 걸어놓은 금줄 바깥으로 사람들이 고개 숙여 기원한다. 움직임에 따라 펼쳐지는 샛노란 무복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잎 같았다. 사람들이 이변을 알아차린 것은 사.. [M] 이걸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2)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니까. 차에서 내린 만식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장장 5시간에 걸친 운전은 사람의 기력을 모두 앗아가서 무엇을 해야겠다는 의욕이 전혀 들지 않았다. 터널은 또 왜 이다지도 많고 길었던 건지 길고 긴 개미굴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하나의 터널을 빠져나올 때마다 꼭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대했다가 실망하길 반복한 끝에 도착한 도시는 바람에 뜨거운 온도가 실려 초가을에도 한여름 같은 더위를 선사했다. 남쪽이라 역시 다르네. 적당히 신도심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는 호텔에 체크인하고 나니 긴장이 풀릴 대로 풀린 만식이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곧 거부할 수 없는 수마가 그를 잠식했다. 일이 꼬여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은 다음날이었다. 생소한 지역이니만큼 무턱대고.. [M] 꿈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M] 폐병원에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M] 이걸 길게 쓸 생각이 없었는데(1) 송도(松都) 말년에 어느 과부가 살았다. 일찍이 남편을 보내고 적적했던 과부는 밥풀을 쥐어 작은 짐승을 만들었다. 머리와 몸통에 다리를 네 개 가진 짐승이 살아 움직이니, 여인은 놀랐으나 곧이어 크게 기꺼워하였다. 『송남잡지(松南雜識)』 # 그 가게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하철 역을 나와 걸으면 프랜차이즈 카페가 하나 있는데, 카페를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면 속칭 '가로수 길'의 시작이었다. 깔끔하게 정비된 돌 길 위에 각종 캘리그래피로 멋들어지게 꾸며진 입간판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다른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내용물이 그들을 즐겁게 했다. 한낮에 쏟아지는 나른한 햇살과 여기저기 심어놓은 조화가 제법 잘 어울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 [M]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 아이는 일곱 해가 되도록 작은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인불명. 어느 병원을 가도 알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효과 없는 처방만을 내밀었다. 간혹 드물게 이어지는 건강한 며칠이 부모의 유일한 희망이었으며, 곧이어 이어지는 지독한 병세는 사람을 단숨에 절망과 슬픔으로 처박았다. 온전한 희망도 온전한 절망도 아닌 상황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더 이상 갈 병원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부모의 곁에 남은 것은 각종 사기꾼이었다. 온갖 유사과학과 미신으로 무장한 이들이 감언이설로 부모를 꾀어냈다. 곧이어 집에는 이상한 물건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어느 산의 영수, 영험한 탱화, 신의 모습을 새긴 조각, 벼락 맞은 대추나무를 태우고 남은 잿가루... 그런 것들이 아이 주변에 늘어날 때마다 아이는 누군가..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