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C 시나리오 <여기, 쥐새끼가 둘 있다.> PART 2 이야기
※ 해당 시나리오 스포일러 있습니다.
# 조금 더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투명한 물이 일렁였다. 건물의 2층까지 잡아먹은 거대한 수조 안을 비단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늘 관리를 해왔던 것인지 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맑은 물에는 싱그러운 수초가 심겨있고 새하얀 모래가 정결하게 깔려있어 보기 좋았다. 그래, 한평생 어디론가 흐르는 일 없이 이대로 고여 아름답게 보여질 자신의 감옥, 수호신의 아쿠아리움이 발치에 드리워져 있었다. 조명을 반사해 반짝이는 물의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도 파문이 이는 것처럼 울렁였다. 본인이 머물던 곳이라 소개받긴 했으나 기억이 전혀 없는 무영으로써는 모르는 척하고 싶었지만 볼수록 느껴지는 기묘한 친숙함이 불길하게 발목을 타고 올랐다. 그때 다시 한번 선택이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이건 왜...?"
"선택해요."
흔히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지. 그러나 그 말은 어디까지나 작은 일상의 선택들이 모여서 삶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하지 배수진을 치고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리라. 수조 앞에서 강요당하는 선택이라니. 정말 배수진이 따로 없군. 쥐어지는 총의 무게와 기시감이 드는 총구의 방향에서 현무영은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방아쇠에 걸린 것은 자신의 손가락이나 이것이 온전히 자신이 내리는 선택이라 할 수 있는가? 단언컨대 현무영은 백유위를 만난 이후로 상황에 휩쓸리기만 했지 무언가를 제대로 선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강가에서도,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손 위에서 놀아났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그 손 주인을 바라본다. 못내 치미는 서러움은 분노가 되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ㅡ그래서 몸소 희생해 주시겠다?"
"이런, 화났어요?"
"네. 당신의 오만함에. 모든 퇴로를 차단하고 내게 선심 쓰는 것처럼,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구는 당신의 말에..."
이대로 총을 쏘거나 혹은 쏘지 않거나 이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이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므로. 무영은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과 희미하게 짓고 있는 미소가 얄미워서 또 어쩐지 야속해서 그의 이야기가 듣고 싶기도,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무영에게 백유위는 그림을 알 수 없는 거대한 퍼즐 같은 남자였다. 그를 나타내는 조각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하나씩 그러모으는 것으로는 도무지 그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쥔 조각이 어느 부분을 나타내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맞춘 조각이 나타내는 그림마저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을 불 빛 하나 없이 더듬어 길을 찾는 것처럼 늘 백유위에게 무영은 헤매는 것 같았다.
"심증만 있었지 이쪽도 확신은 없었어요. 등의 상처를 보고 확신한 거지...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가지고 놀았다 생각하면 곤란해요?"
"거짓말 할 이유가 없으니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을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게 당신의 방식이었죠. "
얼마나 많은 말들을 감추어 왔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등의 오래된 흉터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이것도 그와 관련이 있는 거겠지. '처음 봤을 때'라고 했으니 서로 좋은 만남은 아니었나 보다.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자신을 지켜보았던 걸까. 무영이 제 손에 들린 총을 다시 유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자신이 해야 할 선택도 아니었으며, 어쩌면 맨 처음부터 이러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총구를 자신의 심장에 맞추면서 무영은 총알이 발사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왼쪽 귀를 가느다란 바늘이 뚫고 지나갈 때와 같은 감각으로 여겨졌다.
"어떤가요 백유위씨. 이대로 나를 쏘면 당신은 아무 문제 없이 서락의 산주가 되고, 나를 저 수조에 던져 넣으면 나는 당신을 위한 수호신으로 살겠죠. 무엇이 마음에 드시는지?"
"말했잖아요. 자기를 인간으로 생각할지, 짐승으로 생각할지에 대해 난 여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자신의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는 손길에서 무영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신이 짐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재고의 여지없이 자신을 죽였을 것이다. 서로가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에 대해 일말의 망설임을 보인다는 것은 정말 그 나름으로 정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또 다른 상황이 되었을까? 지금으로서는 의미 없는 가정이지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무색하게 된 지금도 현무영은, 살고 싶었다.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이것 역시 자신이 짐승이기 때문인 걸까?
"...유위씨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당신의 총구가 겨누고 있는 곳에 내 심장이 있으니까. 당신과 같은 위치에. 그리고 사람으로 살고 싶은 욕망은 누구보다 강하구요."
총을 빼앗아 쏜다. 그리하여 저 물속으로 끌어들이면 짐승은 온전한 사람이 되리라. 지금까지 많은 생명을 빼앗았으니 거기에 하나가 더해진 들 새삼스레 죄책감이 생기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그게 백유위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무당 할머니였다면 무영은 진작 사람이 되어 땅을 딛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게 백유위였기 때문에. 이것은 유위를 만나기 전 현무영이 내릴 판단이다.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현무영의 선택. 그렇다면 지금은? 백유위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를 겪고, 이 순간에서도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 생각하는 현무영의 선택은?
"당신은 나를 계속 생각해야만 할걸."
그가 자신의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존재를 확인시켜 준 순간부터 정해진 결론이었다. 그 조용한 방에서 가는 침이 귀를 지나가는 순간 현무영은 돌이킬 수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수조가 자신의 감옥이라면 귀걸이는 족쇄다. 이것을 걸고 있는 이상 자신은 저 남자에게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를 죽인다 해도 자상처럼 남아 결국 수조로 자신을 이끌고 말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귀걸이 거절할걸.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유위를 밀어낸 무영이 수조에 몸을 던졌다. 물이 튀는 소리가 시원스레 울리고 온몸이 차갑게 젖어들어간다. 지상과는 다른 무게감과 한기가 익숙하고 그리운 것을 보니 이곳이 정말 자신의 집이 맞긴 했나 보다. 살 수만 있다면 더러운 구룡강의 물을 마시며 지낼 수 있다 호언장담 했지만, 깨끗하고 청량한 물에 둘러싸이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갇혀살 팔자인가. 겁도 없이 자신의 곁을 지나는 비단잉어의 우아한 움직임을 보며 무영이 생각했다. 백유위 내게 감사하도록 해. 자유가 뭔지 알게 된 짐승이 순순히 우리로 돌아오는 건 드문 일이라고. 짐승인지 수호신인지 모를 것으로 남아 귀걸이 값은 할 테니까.
'... 그전에 얼굴이나 한 번 더 볼걸. 조금은 놀랐으면 좋겠는데.'
짐승은 그렇게 물속으로 침잠했다.
# What's Next...?
"이, 이렇게는 못살아요????"
"이런."
유위의 책상 위로 한 다발의 서류를 내려 놓으며 현무영이 외쳤다. 이미 유위의 책상은 다른 서류들로 인해 포화상태였지만 용케 빈자리를 발견해 차곡차곡 종이 뭉치를 내려놓는다. 이건 오늘까지 검토해야 하는 것, 이건 내일까지. 이건 검토가 끝났으니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하나하나 읊어주는 목록에 유위가 짧은 탄식을 흘렸다. 무영의 말에 반응을 하고 있지만 그의 눈과 손은 여전히 서류에 고정되어 빠르게 내용을 훑고 있었다. 산주 대리가 아니라 문서 처리 하는 기계 같은 모습이었다.
서락성의 사건이 일어난 지 N 개월, 두 사람은 업무 지옥이라고 해도 좋을 환경에 갇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산주를 살려 둘 걸 그랬어요?!"
"그 정도예요?"
"네. 반란을 일으키고 싶을 정도로."
"기회가 이미 지나가서 아쉽겠네요."
부산주 놈은 자신이 이겼으면 이런 결과가 오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아마 몰랐을 것이다. 듣자 하니 원래도 내정은 그의 부하들이 처리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산주 대리는 왜 이런 일들을 스스로 처리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자신은 그 옆에서 같이 고생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갖는 것보다 서류를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부산주를 향한 원망의 말을 백 개쯤 쏟아낸 무영이 다시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것만 처리하면 급한 일은 대부분 끝나니까요. 휴가라도 줄까요?"
"휴가요? 좋죠. 아 빌어먹을 여기 중간 계산이랑 최종 계산 안 맞잖아. 이거 누구야. 그렇지 않아도 추천받은 곳이 있거든요."
"어딘데요?"
"무안(無眼)이요. 낚시로 유명하다더군요."
# 중간 중간 내용에 대해서 뭔가 쓰고 싶었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엔딩의 여파가 크네요. 엔딩 부분 로그를 다시 읽어보니까 당시에는 몰입해서 막 썼는데 감정이 몰아치다보니 막 점프한 부분들이 있어서 좀 다듬는다는 느낌으로 내용을 추가해보았습니다. 좀 더 유위를 죽일 것 처럼 굴다가 포기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막상 저렇게 수조로 들어가서 조건을 찾아서 어떻게든 살아나왔지만. ㅎㅁㅎ)> 여튼 현무영의 선택에는 저런 생각들이 깔려 있었다~ 하는 보충 설명겸 써봤네요.
# 그리고 아래 이야기는 이제 피싱 아이즈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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