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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G Log

[현무영] 그림자 없는 밤(3)

해를 등지고 잿빛 땅거미가 도시에 내렸다. 계획성 없이 증축에 증축을 거듭해 마치 성냥갑이 마구잡이로 쌓인 것처럼 보이는 건물들, 그 수관이 하늘을 조각내 도시는 한 줌 저물어 가는 빛을 틈새에 남기고 어둠에 살라 먹힌다. 허나 이 구룡 안에서도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의 차이는 극명했다. 외부와 가까운 동구룡의 건물들이 하나 둘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네온사인을 켜고 다가올 어둠에 대항하는 동안 서구룡은 침묵으로 순응하기를 택하였으므로. 특히 구룡강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 빠르고 깊게 어둠에 잠겨갔다. 원래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밤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그러니 은밀한 사건은 다 이쪽에 몰려있는 것이겠죠."

"사람 먹는 짐승도 있었으니 틀린 이야기는 아니네요."

"아 그 이야기는 왜 또 꺼내신 답니까?"

 

빛이 들지 않는 외진 골목에서 바깥을 살펴보던 무영이 유위의 말에 투덜거리며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구었다. 불을 붙이면 잠복하는 의미가 없으니 필터 부분만을 질겅이며 버티고 있던 차였다. 후덥지근한 온도에 묽은 안개처럼 퍼져있는 습기가 끈적하게 달라붙어 홍콩의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한다. 밤이 되어 불어오는 바람마저 미적지근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열대야. 이런 날은 편히 잠드는 것이 어려우니 차라리 이렇게 깨어있는 편이 더 나은지도 모르겠다. 비록 그것이 갑작스럽게 정해진 추가근무 때문이라고 해도. 

 

"자정까지 모두 모인다고 했었죠."

"기다리기 힘들어요? 그 나이가 산만해지기 쉽긴 하지만 참을성을 가져봐요."

"누가 힘들다고 했습니까? 확인 차 물어 본 겁니다. 확인 차!"
"잠복중이라고 소문 낼 거 아니면 목소리 낮춰요."

"......"

 

유위의 태연한 목소리에 무영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을 다물었다. 어지간한 말로는 이길 수가 없으니 잠자코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정신건강에는 더 이로우리라.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태평하게 주변을 가늠하고 있는 그의 상사는 매번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헛소리로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재주가 탁월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나름 친해졌다고 이러는 것인지, 이 상황이 친해진 결과라면 이 사람의 주변 관계는 어떻게 유지가 되고 있는 것인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겠지만. 제법 큰 일들을 같이 겪어 왔지만 무영에게 유위는 여전히 그 전부를 알기 힘든 사람이었다. 사람의 전부를 알 필요는 없다. 알 수도 없고.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백유위라는 사람에게 생기는 호기심과 더불어 은근한 호승심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모처럼 휴식이라고 나왔는데 이런 꼴이라니. 유위씨 일복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어쩌면 자기가 있어서 두 배가 된 건지도 모르죠."

"전 유위씨만큼 일 중독자가 아닌데요."

 

백유위는 일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일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수면 시간 자체도 적은 사람인데, 그 몇 시간 안 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조리 일에 쏟아붓고 있었다. 아무리 뤄등륜이 죽고 서락이 수습 기간을 가지고 있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거기에 문제는 그 일 중독자 백유위가 현재 서락에서 가장 급이 높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가장 윗사람이 일을 하는데 아랫사람이 편하게 있을 수 있을 리가. 덕분에 서락은 몇 달째 비상사태를 맞은 것처럼 모두가 일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당연히 유위의 (나름) 측근으로 알려진 무영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친 듯이 몰려드는 일을 쳐내고 있었다. 물론 유위와 다르게 무영은 일 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휴식을 부르짖었고, 때로는 그 휴식에 유위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그 일환 중 하나가 밤 나들이였다. 사무실 붙박이 가구라도 된 것 같은 꼴이 답답하니 바람 좀 쐬자고 시위하면 유위는 잠시 무영을 보다가 순순히 따라 나왔다. 

 

취미 생활이 딱히 없다는 상사를 데리고 밤 나들이를 다니기를 몇 번, 그 사이 괜찮은 술집이라든가 가게를 찾아내는 소소한 성과도 있었고 솔직히 나쁘지 않았다. 오늘 전까지는. 

 

'하필이면 브로커를 만나 가지고는.'

 

그렇고 그런 술집에 약을 하는 놈들이 굴러다니는 게 하루 이틀의 일이겠냐만은 눈앞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도 그냥 둘 사람이 아니었다. 서락에서 허락한 적이 없는 물건이라면 더더욱. 적당히 배후에 누가 있는지만 캐고 돌아가나 싶었는데 그 배후에 반(反)서락을 들먹이는 놈이 있었다는 것도 예상 밖의 일이었다. 어둠에 반쯤 몸을 묻고 벽에 기대 서 있는 유위를 힐끗 돌아본 무영이 뒷목을 쓸어내렸다. 반서락파의 집회가 있을 거라고 정보를 내뱉던 순간 나긋하게 웃으며 말하던 유위의 목소리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탓이었다. 

 

'밤마실도 괜찮네요.'

 

그것은 분명 어떤 전조였다. 

 

기다림의 끝에, 길가의 질척한 진흙 위를 조심스레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서구룡의 고만고만한 낡은 건물 하나로 사람들이 슬그머니 모여들고 있었다. 하나같이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라면 흔히 볼 수 있는 추레한 차림을 하고 있으나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들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짐작케했다. 주변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하나 둘 문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본 유위가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다 모인 것 같으니 가서 인사나할까요?"

"인사를 받아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어떻게 처리할까요?"

 

낡은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쇠로 된 문은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처럼 번쩍거렸다. 손잡이가 보이지 않는 철문에는 사람의 눈이 있을 법한 위치에 작은 직사각형 형태의 창이 달려 있었다. 무영의 질문에 유위가 가볍게 노크하며 나지막이 답했다.

 

"둘 만 남겨요."

 

 

 


 

 

나이프를 꽂아 넣는 순간 손 끝에 걸리는 묵직한 감각에 좀 더 힘주어 비틀었다. 이미 후각은 마비된 지 오래건만 칼을 뽑는 순간 새롭게 흐르는 혈향이 잠시간 코 끝을 맴돌았다. 절명한 시체를 달려드는 다른 이에게 떠넘기고 자세를 낮추기가 무섭게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반파된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듯 뛰어내려 사람들 사이에 섞여든다. 여기저기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에 유리가 깨진 낡은 전등이 간헐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섞여 울렸다. 사람들의 성난 외침과 비명, 어떻게든 혼란을 수습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한 데 어우러져 실내는 아비규환. 그 속을 무영은 미꾸라지처럼 잘도 휘저으며 다니고 있었다.

 

'오른쪽에 하나, 정면에 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전등부터 깨버린 덕분에 실내는 반쯤 어둠에 잠겨 시야가 여물지 못한 이들이 실루엣을 따라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상황이었다. 모인 이들은 스무명 남짓. 단 둘이서 전황을 바꾸려면 지형을 이용한 난전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내세운 전략이었다. 사람들이 침입자에 대한 대비를 하기 전에 의자부터 걷어차 진형을 흩뜨리고는 속으로 파고 들었다. 어둠은 유위나 무영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날 선 감각이 공기의 흐름마저도 읽어내는 듯 무리없이 다른 이의 움직임을 읽고 봉쇄했다.

 

ㅡ 타앙

 

날카로운 총성이 울린 것도 그 때였다. 누가 누구인지 식별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차마 총을 꺼내들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누군가 총을 쐈다. 그와 동시에 무영의 왼쪽 뒤에 있는 남자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사람들이 잠깐 얼이 나간 틈을 타 한 명의 다리를 걸어 쓰러뜨리고는 유위가 있는 방향으로 몸을 굴렸다. 권총을 가볍게 돌려 손잡이로 한 명을 찍어낸 유위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왼쪽 신경 안 쓰는 습관 고치라고 했을 텐데요."

"습관이 쉽게 고쳐지면 습관입니까?"

"못 고쳐서 방금 한 번 죽은거에요."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린다. 무영이 시야에 사라지니 유위의 행동이 더욱 대범해졌다. 총구를 감싸 달려드는 이들을 팔꿈치로 쳐내고 그대로 뒤로 돌아 간격을 벌려 등에 한 발 박아넣는다. 뒤늦게 무기를 챙겨들고 휘두르는 팔을 잡아당겨 중심을 흩뜨리고 총 손잡이로 목을 쳐낸다. 이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이 한 번에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에 잠겨 무성 흑백 영화처럼 뚝뚝 끊어지듯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감탄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쉽지 않네.'

 

쓰러진 사람이 절반 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상황은 복잡하게 돌아갔다. 다들 어둠에 눈이 익어 시야가 어느정도 확보되고, 사람이 줄어 움직이기 편해진 탓이었다. 나름 반서락파랍시고 제법 굴러먹던 놈들이 모였던 것인지 다들 싸움에 어느정도 능숙한 것도 한 몫 했다. 여기저기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싸움의 2차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전투씬 연습삼아 쓰다가 GG..

 

사실 이후 장면 구상으로는 무영이 칼을 던져서 유위 뒤쪽에 있는 녀석 처리해주고? 다시 유위가 그 칼을 다른 녀석에게 꽂아서 돌려주는 그런 느낌을 내고 싶은데 어렵다 어려워.. 

여튼 뭐라고해야하지 퍼스널컬러 현장레드인 두 사람이 서류로 쌓인 스트레스 푸는게 보고싶었음

나중에 필받으면 수정할 수도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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